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23년 3/4 회고: Back to ground zero

일상기록장/일상 기록

by hyuga_ 2023. 9. 10. 01:27

본문

2023년 9월 현재 저는 비전공생 신분으로 개발자 취업을 준비중입니다. 그 과정과 일상의 잡다한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블로그 첫 글 스타트를 끊을겸, 첫 글로 최근 있었던 변화(개발자 취업을 준비하게 된 과정)를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나버린 시간은 살 수 없다.
 
그 중에서도 20대는 더더욱 귀중하다고들 한다. 나는 그 귀중한 20대를 모조리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는 데에 투자해온 것 같다. 이에 대한 답이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그보다 시급한 사안이 없고, 그보다 시간을 값지게 쓸 수 있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의 후반으로 접어드는 지금 후회는 없느냐고 묻는다면, ‘일말의 후회가 없다면 거짓이고, 특별히 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름대로 잘 애써왔다.' 정도로 답할 것 같다.
 

Pivoting

대학교를 경제학과로 왔다보니 주변 친구들의 취향에 휩쓸려 나도 금융투자업계에 가기 위해서, 또 그 울타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여 세상에 효율성을 더하는 직업이라니, 대학생활의 절반 이상을 기꺼이 쏟을 만큼 충분히 멋있었다. 나름 열심히 달렸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과 배움, 좋은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전문적이고 보상도 확실하며, 개인적인 흥미면에서도 돈의 흐름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좋은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나는 모 증권사의 리서치센터 테크팀에 속해있었는데, 반도체나 IT 하드웨어, 종종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서도 봐야하는 자리였다. 당시에 정말 운이 좋게도 인사이트 넘치는 분들 밑에서 일할 수 있었다. 단순히 기업의 단기 실적이나 산업의 up & down 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와 정보 기술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다방면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는 분들이었고, 나는 어깨너머로 보고들은 걸 최대한 많이 훔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원래도 IT 라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 관련 뉴스 플로우를 챙겨보곤 했는데, 업무와 연계되기 시작하니 더욱 깊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업무외 시간에 다양하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엔지니어'라는 사람들의 세계, 이들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퍼트리는지에 대해서 많이 알게되었다. 그리고 하게 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상상 위에서, 그 중 일부가 실현된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프레드릭 터먼, 노이스 무어, 팀 버너스 리,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조스, 모리스 창, 마크 저커버그, 젠슨 황, 일론 머스크 등.. IT 업계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거물이 정말 많다. 이런 사람들의 비전과 추진력, 그리고 그 상상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조력자들이 노력한 결과 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세계는 물론 복잡계이지만, 현재 우리의 생활상의 많은 부분이 공학자들의 활약에 의해서 탄생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남은 21세기를 이끌 주역도 마찬가지로 이런 사람들인 것 같다. 
 
멋지고 값진 인생들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접하다보니, 또 기타 여러가지 생각이 쌓이면서 점차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가’를 주로 고민했다면, 어느새부터 ‘나는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혼자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와 앉았는데, 문득 그 질문의 답을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이곳에서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떠한 확답도 내리지 못한 채, 조용한 사무실 한복판에서 나는 표류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름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환상일 수도 있겠다, 아니 오히려 잘난 ‘척’에만 능한 기생충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원래 다 그런거 아니야?' 라며 합리화해보려 했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5년 뒤, 10년 뒤의 내 미래가 추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내려가기에는 너무 높이 가버린 시점에서 내가 서있는 길을 부정하게 될 것 같았다. 
 
금융투자업종으로부터 멀어진 시선은 자연스럽게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어준 '엔지니어'라는 직업군으로 향했고, 그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점차 이 세계의 가장 주요한 기반이 되어가고 있는 정보 기술이라는 것을 깊게 이해하고 싶었다. 이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들의 이야기, 낮은 비용으로 pivot을 반복할 수 있다는 소프트웨어의 특성, 다양한 도메인에 걸쳐서 편의성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활약상들을 보며, 저기라면 내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겼다. 
 
사실 20대 초반에 개발자 진로를 잠시 고려한 적이 있었는데, 백준 문제만 한 달 정도 풀어보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에겐 금융권의 높은 연봉과 여의도 근무 등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직업을 생계의 수단과 지위 상승의 수단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다양한 경험을 거쳐 생각의 변화를 겪은 후에 다시 보니 직업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는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게 더 낫겠다는 재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뭐, 말은 좋았으나 용기를 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그 직후에 나는 뜬금없게도 VC 심사역이나 IT 기업의 전략팀으로 가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나름의 합리적인 생각이랍시고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역량을 언제 키우고 있겠냐,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근처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증권사 인턴이 끝났고, 바로 직후에 네이버 계열사의 전략팀 면접 기회도 얻게 되었다. 드디어 IT 산업에 합류하는가? 하고 기쁘기는 했지만,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마치 '네가 원하는게 정말 이거야..?' 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내가 로망을 가진 대상은 직접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었는데..

 

새벽 늦게까지 잠을 설친 나는 결국 면접 당일 아침에 불참하겠다는 메일을 보냈고, 그 뒤로 2주 정도를 멍하게 날려보냈다. 돌아보면 아직 용기가 부족해 용기를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번아웃에서도 빠져나올 겸, 향후 계획도 세울 겸 충분히 쉰 다음에 다음 행선지를 주변 지인들에게 알렸다.

나 개발자 도전하기로 결심했어 😅

 
그게 올해 초의 일이다. IT 버블 이후 최고로 거품(?)이 낀 개발자 신입 시장에서, 그렇게 나는 수많은 불나방 중 하나가 되었고 주변 지인들 반응은 충격😱과 멋있다👍로 나뉘었다. 앞서 적었듯 개발 쪽으로는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없고, 또한 채용시장도 극히 추워질 것이 눈에 뻔했기 때문에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비전공자의 개발자 도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꽤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사실들 위에 내린 판단이었으니,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믿음과 신념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좋게 표현하자면 그렇고 시니컬하게 표현하자면 불나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내 결정을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께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따라서 지금 내 상태는 제목 그대로 Back to ground zero이다. 0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물론 아예 0은 아니다.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이 나의 세계를 많이 확장해주었으며, 덕분에 쉽게 얻기 힘든 소프트 스킬들을 체득했다고 생각한다. 스무살 신입생보다는 더 비옥한 토양에서 시작하는 셈이니 나름 긍정적이지 않나? 
 

 
앞으로 2~3년은 죽어라 고생해야 비로소 남들과 비슷한 선상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도 기술적 기반이 점차 쌓이고, 또 비즈니스 임팩트를 고려해야 하는 위치까지 무사히 올라가면 내 기존 분야였던 비즈니스 분석, 보고서 작성, 재무 분석 등과의 시너지가 좋지 않을까?
 



10년 후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의미한 가정이라는 걸 알고있지만, 다양한 상상을 하다보면 지루한 일상도 조금 버틸만해진다. 미래의 유니콘 기업에 합류하기,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VC로 가서 창업 생태계에 이바지하기, 좋은 개발자가 되어 거대한 서비스에 기여하기 .. 지금으로썬 모두 꿈만 같은 얘기들이다. 즐거움과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내 손으로 만들고 배포하는 즐거운 일상, 이런 망상을 하면서 버티는 요즘이다.

  

불나방으로 남을 것인가 나비가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상반기 회고글이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9월이고 어느덧 독학을 시작한지 6개월 가량이 지났다. 지난 날들을 평가해보면 열심히 달리긴 했는데 막상 남은 건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옆에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함께 걸을 동료도 없다보니 사소한 것까지 직접 찾아보고, 조언을 구하러 다니고 또 겪어보며 알아갔는데, 그러다보니 어느 한 방향에서 길게 뻗어가지는 못했다. 온갖 걸 찍먹만 해본.. 개발적으로 딥다이브를 해본 경험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슬슬 위기감을 느끼던 6월 말..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독학으로 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가지 않았던 부트캠프를 다시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죽도 밥도 안 되느니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나? 그렇게 나는 매우 눈여겨보고 있던 크래프톤 정글이라는 부트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 이번에도 잘 헤쳐갈 수 있겠지..?